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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곱돌의 역사적 조명
작성자 BY. 금산돌그릇 (ip:)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발 토기 솥이나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청동제 솥을 보면 선조들이 일찍부터 솥을 취사용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흙으로 빚은 솥이 나오기 전 석기시대에도 돌로 만든 솥을 사용했다고 한다. 온양 민속박물관에 있는 삼국시대의 곱돌솥은 근대에 제작된 돌솥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어 우리 조상들의 돌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서기 7~8세기 경 신라인들은 돌솥을 식생활 용구로 썼는데 주전자와 약탕기 외에 냄비도 만들었다. 돌 냄비엔 전골 등 주로 음식을 조리했고 고기를 굽는 데도 썼다. 편편한 돌에 고기를 구우면 맛이 유별난 것은 지금도 경험할 수 있지 않는가. 인간이 맨 먼저 사용한 돌화살, 돌칼 못지않게 일찍이 제작된 조리기구로는 맷돌, 절구, 악연 등이 있다. 양념을 빻는 소형 절구를 비롯하여 낟알을 찧는 대형절구, 맷돌, 악연 등을 오래 이용하다보면 돌가루를 적잖이 먹었음 직한데, 별탈이 없으니 돌은 유익한 것임이 분명하다.

돌은 돌이지, 돌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옛 한국인들은 돌을 돌로만 보지 않았다. 시인 조지훈이 돌의 미학(美學)을 논한 가운데 '돌의 미는 영원한 생명의 미이며 돌에 피가 돌고 돌에는 맹렬한 의욕과 사나운 의지가 있다'고 하였다. 비단 조지훈처럼 예리한 관찰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옛 한국인들은 산과 들과 시냇가에 지천인 돌, 그리고 마당과 장독대, 담을 형성한 돌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이 불변의 의지를 간직했고 강인한 생명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커다란 바위에 대해선 경외심을 품었으며 바위에 기원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든지, 바위를 깨뜨리면 재앙이 내린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바위를 옮기거나 깨뜨린 탓에 마을의 정기가 사라져 큰 인물이 나지 못하고 사람들이 단명 한다는 전설이 적지 않으며, 또 바위에 생김새와 앉은 위치에 따라서 마을에 음풍(淫風)이 깃든다든지, 풍요가 좌우된다는 이야기 역시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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